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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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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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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환 (6.15 유럽공동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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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는 1940년도부터 강원도 통천군 협곡이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 앞에서
장이 서게 되면 주변 촌락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행 길을 꽉 메우고 있었다. 장날을 빼놓고,
보통 날은 무척 한가한 동내다.
그런데 1945년 8월15일 점심때 쯤 해서 밖에서 갑작스럽게 만세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신발도 신을 사이 없이,
나는 행 길로 뛰쳐나갔다. 순간 가슴이 뭉클 해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평생토록 가슴을 달려가며 묵묵히 살아오던 동내사람들이 “조국해방만세”를 하늘 높이 왜치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정신없이
행진하고 있었다.
삽시간에 행 길을 메운 인파속에 나는 뛰어
들어갔다. 발을 옴 겨 갈
틈새도 없이 나의 몸은 사람들 사이에서 둥둥 떠 있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언제 한 번 본일 없는 낫선 사람들과 서로 얼싸 껴안고, 우리는 한 민족임을 눈물겹게 느끼면서
기뻐했다.
40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일제의
억압과 착취로 무참히 시달려 오던 우리 민족은 드디어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할 수 없었던 놀랍고 환희의 절정이었던 그 날! 그 날을 우리가 어이 잊을 수 있겠는가!!
“조국해방만세”소리가 하늘을 찌르듯 메아리치는
군중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해방된 민족의 기쁨을 몸서 경험 할 수 있었다.
밝은 하늘을 못보고 캄캄한 세상에서 평생 땅만
내려다보며, 죽지 못해 벙어리처럼
살아오던 이 촌사람들의 가슴속에 이처럼 불타는
조국사랑이 굳게굳게 간직 되어 있었다니!!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한 민족 사랑을 뜨겁게 경험하게 되었다.
대하처럼 흘러가는 사람물결 저 건너편에는 입었던
위속내의를 벗어 뒤 흔들며 정신없이 만세를 부르고 있는 외삼촌의 모습도 보였다. 나의 부모님도 틀림없이 어딘가 인파속에 계실 것이다. 외삼촌은 얼마동안 우리 집에 와계셨다. 그는 활발한 현대 청년이었다.
할머니 못지않게 나라걱정 하시던 씩씩한 삼촌이여! 드디어 우리는 해방 됐습니다!!
기뻐하시라!
힘차게 흔들어대는 <태극기>는 하늘을 덥혀 버렸고, 목이 쉬도록 부르고 또 부른 애국가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후비며
격동시켰다.
그런데 태극기와 애국가는 일제로부터 철저히금지되어 있었는데, 어데서
이 많은 태국기가 순식간에 나타나 하늘을 덮어 버렸고, 몇 십 년 불러 보지 못한 애국가를 어떻게 이와 같이
천지를 요동 시키게 모두가 부를 수 있었는지 지금도 감탄하는 사실이다.
우리 동내에 부자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방학이 되면 사각모자에 진한 푸른색양복으로 차려입은 아들이 촌 동내에 나타난다. 그러면 사춘기에 접어든 말 같은 처녀 몇이 가슴을 태우게 된다. 그 중에 나도 포함 되 있었다.
그는 해방되기 전부터 고향을 찾아오면 의례히
처녀들을 모아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가 일본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일본제국주의 밑에서 수탈당하고 있는 조국을 분명하게 볼수 있게 되었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른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망론하고, 우리민족은 하루속히 우리 힘과 지혜를 모아 일제에서 해방하는 그 날을 쟁탈해야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우리처녀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우리처녀들은 숨도 크게 못 쉬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으나, 어려운 낱말들을
이해 못했다. “선생님! 제국주의가 무엇입니까?”
그는 다정한 미소를 띠우면서 “제국주의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강하고 큰 나라가 약하고 작은 나라를 정복하여,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해가는 것을 뜻합니다.
보세요! 일본은 19세기 초엽부터,
타락하고 무력한 우리나라 왕실을 약보고, 침략의 발판을 만들어 가면서,
드디어 1910년 우리나라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본은 조선민족을 그들 마음대로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해 갑니다. 우리 동내 사람들이 혀가 빠지도록 농사 진 곡식들을 공출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약탈해가므로 우리들의 삶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참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흥분하여 말을
이여가지 못했다.
해방하는 그 해, 봄방학에 고향을 찾았던 그는 떠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해방하는 날, 나는 여러분과 같이 고향에서 희망찬 날을 보낼 것입니다.” 라고 마치 예언이나 하는 것 같이 약속을 남기고 떠나갔다.
우리 젊은 처녀들은 모여 앉았다하면 사각모자청년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특히 그가 남기고간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벅찬 여운으로 심장을 두들겼다. 우리는 은근히 그를
그리워했다. 부자 집 아들치고 똑똑한 놈 하나도 없다고 동내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사각모자청년은 예외로 똑똑하게 우리 눈에는 비쳤다.
그런데 그 청년이 집을 떠나가면 동내어른들은
모여 앉아 수군수군 이야기가 많았다. 내용인즉, 그 청년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신봉자라고 하면서 쉬쉬 목소리를 죽여 가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영감은 “그 청년은 노동자나 농사꾼들의
권익을 위해 주장하는데 사회주의자면 어떻고 공산주의자면 어떻다는 말인가?! 나는 없는 사람 위해 생각하고 노력하는 사람편이다.”
그는 얼굴이 벌개 지며 토해 냈다. 몇 영감들은 옥신각신
하면서 찬반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처녀들은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걱정과는 관계없이 그의 이야기 내용이 새로웠고, 그리고 그가 지적하는 내용은, 일본제국주의 밑에서 고생하는 우리민족이,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 하는가 하는데 대하여 분명하게 분석하고 지적하는 것 이여서, 우리 처녀들은
그의 틀림없는 주장을 누가 무엇이라 해도, 옳다고 확신을 가지게끔 되었다.
우리처녀들에게는 어른들처럼 사회주의가 문제
되지 않았다.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탓도 있었겠지만, 어떤 이념보다는 사각모자청년의 주장처럼 일제의 속박에서 하루속히 우리민족이
독립되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과 지해를 합쳐서 투쟁해야한다는 그의 주장과 의지에는 하나도 잘못이 없을 뿐이
아니라, 어쩐지 우리민족이 일본 없이 행복하게살수 있는 매우 희망적이며, 분명한 목표를 우리들에게 안겨준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 되어 드디어 자유로운
인간들이 됐는데도 어리둥절했다.
해방되면 고향에 도라 온다던 멋진 사각모자청년은
약속대로 일본에서 학문을 마치고 우리 동내에 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은근히 속 태우며 그를 고대하고 있던 동내 처녀들은 두 팔을 번쩍 들어 그의
귀가를 환영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앞날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에 부푼 가슴을 억제하기에 고민이 많았다. 기다리고 기다린 그가 고향에 도라 왔지만, 그는 이미 소문난 유명한 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어서, 사방에서 강연초대를 받아 전국을 다니게
되었다.
동내어른들은 바쁜 그를 모시고 하루저녁 큰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처녀들은
이 모임의 성공을 위해 동분 서주 뛰어 다니며, 모임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강단에선 그는 과연 미남자의 풍채의 소유자였다. 처녀들은 강사에 홀려 그의 연설을 제대로 경청
할 수 없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그의 연설은 모든 청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어른들은 만족해했다. 우리처녀들은 모임을 마치고 그를 둘러싸고 앉아서, 밤새토록 그의 이야기를 경청 하면서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만 그에게 도취되고 말았었다.
그의 강연원고를 받아 안고 우리처녀들은 며칠
동안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 된 것은 어쨌든 기뻐해야할
경사입니다. 그러나 이 해방은
우리역사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준 서곡에 불과 합니다. 즉 이제부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해방을 위해서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변혁의 작업이 절대 필요 합니다.
토지개혁, 노동조합조직, 노동조건개선, 문맹퇴치, 더 중요한 것은 친일파 청산문제, 등등 이런
작업을 진행 하기위해 민족 자결의 뭉친 행동이 절대 필수적으로 요구 됩니다.
참다운 미족해방은 하루아침에 그냥 주어지는
선물은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가슴과 손발이 하나로 뭉쳐 저서 힘차게 건설해 나아갈 때 비로소 얻어지는 우리의 것, 우리의 해방이 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자주적 나라건설은 강대국들의 간섭으로 자칫하면 오랜 세월이 필요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중요 합니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한숨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동내사람들은 매일저녁 모여 앉아 청년의 강연을
재분석하며, 실재로 처리해야할
문제들을 중심으로 고민했다. 말하자면 일본사람들의 처분문제, 치안문제,
교육문제 등등을 이론뿐 아니라, 해방된 새로운 현실에서 요구되는 산적한 어려운 문제들을
책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있었다.
악질 주재소(경찰서) 책임자였던 일본놈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없었지만, 아직도 남아서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사람들의
처분문제는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했다.
서울과 평양을 다녀온 미더운 청년은 바쁜 일정에도우리 동내를 찾아 주는 일을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매번 동내 어른들과 우리에게 큰 소식을 전해주곤 했다. 즉 서울에서는 여운형선생이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치
정부수립을 위해 동부서주 뛰고 있고, 평양에서는 만주벌판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혁명투쟁 하시던 김일성 장군이
평양에 입성하여, 사회주의 조국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그 함성이
평양시를 압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원산 지방에서는 이미 야간학교를 설치하고 문맹퇴치(주로 여성들)를 위해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사각모자청년의 말처럼, 우리 온 민족은 해방된 조국 땅에다가 새롭고
자주적인 희망의 나라 건설을 세우기 위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시대요청에 책임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고 서로 벅찬 가슴을 어루만지며 용기를 주고받고 하는 동안, 정신없이 몇 달이 흘러갔다.
그런데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정국은 날이 갈수록 어수선해 갔다.
가슴이 벅차던 환희의 기운은 점차 사라저가고 어른들의 모습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사각모자청년의 식견이 그립고,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평양에서 당분간 건국사업으로 인하여, 그의 고향인 우리 동내를 당분간 찾아 줄
수 없게 되어서, 동내처녀들은 물론 모두가 참 아쉬워했다.
물론 사각모자청년은 우리 곁에 오지는 못 했지만, 고맙게도 자주 우리들에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말씀 드립니다. 세계2차대전에서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항복하게 되자, 연합군은 전후 세계문제를 토론하기위해 ‘카이로회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1943.11.12)
연합국은 그 회담에서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다.>라고 결의하고, 그리고 독일이 패망한 후 연합군은 ‘포츠담회담’(1945.7.17)을 열었을 때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재확인 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항복한 일본은 ‘포츠담회담에서의
결의를 수락할 수밖에 없어, 이것으로 조선은 일제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기 며칠 전(1945.8.9)소련군이 참전포고를 하고 8월12일 이미 이북 청진에
상륙하여 남쪽으로 계속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군은 일본<오끼나와 섬>에
있었는데, 미국은 소련군이 조선전체를 장악할 것을 우려해서 재 빨리 우리나라에 군대이동을 했어야하는데,
신속한 군대이동이 불가능한 것을 확인한 미국은 초조해 하면서 우리나라 38선을 경계선으로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일본군대 무장해제 시킨다는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38선 경계선을 소련에게 제안 했는데,
이 제안에 소련은 동의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우리 민족의 뜻과는 상관없이 외세의
욕심에 따라 38경계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지만, 이 외세는 조선반도의
민족 단일 세력의 확장을 차단하기 위해 ‘신탁통치’를 제안해 나왔고, 이로 인하여 우리 민족 간에 대 혼란이 야기 되었습니다.
반탁이냐? 친탁이냐? 하면서 우리 내부가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미족의 단합이 어느 때 보다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에, 이 신탁통치 무제는 우리 내부에 막대한 어려움을 조성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강대국의 흉악한 흥정에 빠져 들어간 우리
민족은, 결국
38경계선을 두고 남북 분단이란 크나 큰 멍에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남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식민 정책에서 미국 식민군정정치로 대치되었습니다.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쳐
투쟁하다 이슬로 사라진 수없는 애국지사들이 땅속에서 얼마나 애통할 것입니까!! 그것뿐입니까! 해방된 우리나라를 우리 손으로 건설하려는
애국지사들의 목숨을 미군정은 사정없이 앗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프고 기 막히는 현실입니까!
가슴을 치고 통곡한들........
다행한 것은 이북에서는 소련의 군정통치가 아니라
김일성장군을 중심으로 자주정치가 시작 되었습니다.
우선으로 친일파 청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주석의 연설문 중에서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그에 예속되는 것을 반대하며 건국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체로 판단하고 자기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자주적인 입장과 창조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참다운
민주주의는,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에게 예속 되는 것을 반대할 뿐 아니라 남을 예속 시키는 것도
반대 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계급, 하나의 정당, 하나의 단체, 하나의 종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광범한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는 반제국주의며 애국적인 모든 계급, 정당,
단체를 망라하는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적 인민들이 연합할 것을 요구합니다........“
62회 광복절을 맞이하며 잊을 수
없는 사각모자청년의 강연의 토막토막을 나는 되 살려 본다. 그리고 그 짧았던 환희의 그 날,
해방의 그 날을 어제 일 같이 새겨본다.
60여년이 지난지금도,
분단문제를 해결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우리 민족은,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모두
벌떡 일어나서 손에 손을 쥐고, 압 뒤를 살피지 말고 전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 바란다.
통일 염원하는 김순환 (6.15 유럽공동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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